며칠 밤을 꼬박 세운 끝에야 병원을 찾았다.
뱃속 어딘가가 칼날처럼 쑤시고, 다시 쪼이더니
지나치게 조용해졌다. 마치 고요한 폭풍처럼.
“담석이 꽤 크네요. 담낭제거술을 받으셔야겠습니다.”
의사는 너무 쉽게 말했다.
내 몸에 있던 장기 하나가 곧 ‘없어진다’는 사실보다,
그 말을 너무 익숙하게 내뱉는 표정이 더 낯설었다.
수술 전, 의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치킨 같은 건… 먹고 싶어도 좀 참아가며 살아야 해요.”
그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그 정도쯤이야’라는 안일한 소리가 들렸다.
수술은 빠르게 진행됐다.
작은 구멍 네 개,
복강경이라는 이름의 카메라가 내 안을 들여다봤고
나는 마취된 잠 속에서
십여 년 간 함께 살아온 기관 하나를 보내주었다.
깨어났을 때
나는 이제 ‘담낭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실감이 안 났다.
배에 붙은 거즈만이 내가 무언가를 잃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실감은,
며칠 뒤 첫 식사를 하고 나서야 찾아왔다.
기름기 없는 밥 한 숟갈에도 속은 더부룩했고,
고작 반 그릇을 먹고도 온몸이 피곤해졌다.
장기가 하나 사라졌을 뿐인데,
내 몸은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사람처럼
낯선 리듬에 버벅였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커피를 마신 날 오후 내내 배가 부글거렸고,
기름기 있는 국이나, 우연히 한 점 집어먹은 삼겹살 한 줄에도
빠짐없이 설사가 따라왔다.
단순히 ‘식후 불편함’을 넘어서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지고,
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매끼 시험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변화는 다이어트를 어렵게 만들었다.
수술 전에는 ‘먹고 운동하면 빠진다’는 단순한 공식이 통했지만
이제는 ‘먹는 것 자체’가 내게는 과제가 되었다.
지방을 줄이고 건강하게 먹으려 해도
조금만 자극적인 음식이 들어오면
장이 먼저 반응했다.
다이어트를 하려는 의지보다
‘탈이 나지 않도록 하루를 무사히 보내야 한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담낭은 없어도 산다잖아.”
많은 이들이 가볍게 말했지만,
그건 ‘산다’일 뿐이지 ‘익숙하다’는 아니었다.
나는 이제,
음식을 천천히 씹고
식탁에 앉기 전 메뉴를 오래 고민하며
기름기 하나 없는 국물에 마음을 놓는 사람이 되었다.
소화가 잘 되는 날이면
그 자체로 작은 기쁨이었다.
담낭제거술은 내게서 하나를 앗아갔지만,
또 다른 하나를 남겨줬다.
내 몸을 이해하려는 태도,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를 돌보는 감각.
담낭 없이 산다는 건,
단순히 ‘없다’는 말로 정리되는 일이 아니다.
그건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날 때쯤,
나는 나를 훨씬 더 정중하게 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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